계기
당시 웹툰을 즐겨봤었는데 우연히 '달리자 호주'라는 웹툰을 보게 되었다. 정식 연재 웹툰은 아니었고 베스트 도전에 있던 웹툰 중 하나였는데 영어도 안되고 현지 사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부딪혀가며 호주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가분이 겪었던 각종 에피소드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빠져들어 참 재밌게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간 나도 저런 가슴 뛰는 멋진 도전을 해봐야지" 그 후로 수년이 흐른 뒤 나는 호주로 떠나게 된다.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를 품고서.
출발
한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군대도 다녀왔으니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장기간 집을 떠나있을 때면 여전히 남겨진 사람들을 걱정하게 되는 것 같다. 섭섭함과 미안함을 뒤로 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광저우에서의 경유
내가 티켓팅한 항공편은 중국 광저우를 경유하여 호주 멜버른 공항으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경유지에서의 체류시간이 긴 관계로 항공사에서 임시로 묵을 호텔을 제공해줬었는데 최종 안내를 받기까지 꽤 오랜시간이 소요되었던 것 같다. 어찌어찌해서 공항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는데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조용하고 깨끗했다.


대충 짐을 풀고, 바깥 구경 좀 하려는 찰나 배에서 "꼬르륵"하고 배꼽시계가 울렸다. 긴장한 탓인지, 설렘 탓인지 오랫동안 공복상태임에도 허기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호텔 옆에 한국 식당이 있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꽤 큰 식당이었는데 여기 사장님이 오셔서 밤에는 1층에서 술집도 하니 이따 술 한잔하러 오라고 해서 식사 후 간단하게 한 잔하러 갔었다. 타지에서 낯선이의 친절함을 단순히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의심할 생각조차 못 해본 것은 내 실수였다.
술이나 한 잔하고 일찍 들어가 자려고 했는데 아까 그 식당 사장님이 내 옆으로 와서 계속 말을 걸었다.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지부터 시작해서 나이는 몇 살인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면서 내 주의를 분산시켰고 그 틈을 타 종업원에게 술을 좀 더 가져오라고 했다. 이때부터 이상함을 눈치챘다. 손님인 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술병들이 테이블에 올라오기 시작했으나,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을 방불케 하는 그녀의 영업력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인 한 명이 더 합석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친구는 나랑 동갑이었고 이곳이 아버지 친구분의 사업처라고 해서 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둘은 잠시 바깥에 나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친구는 어서 이곳에서 빠져나가라며 이곳의 영업방식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나왔을 때는 이미 400위안(작성일 기준 한화로 66,000원)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몰랐던 내게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내 코를 베인 이번 일은 '낯선 친절은 경계의 대상'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셈이다. 나랑 동갑이었던 그 친구는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다며 한국에서 꼭 보기로 했었는데 현시점에서는 그때 인연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해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과거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까닭에 중국의 거리와 마트는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다. 특히 저렴한 중국 식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장이긴 하지만 작은 돈으로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덕에 '부루마블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었다. 오랜만에 중국에 방문했으니 예전에 즐겨먹던 요플레와 간단한 간식거리로 그 시절의 향수에 빠져본다.



사실 제공되는 호텔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다음 날 출국 수속을 위해 일찍 자려고 했지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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